세상속의 고운미
event_available 09.10.06 04:21:37
1802

작성자 : 고운미

엄마는 소풍중

본문

엄마는 소풍중 <br />
<br />
외래를 가로질러 레이저실로 종종 걸음을 하는데 대기실의 많은 20대 젊은이들 가운데 초로의 신사가 할머니와 함께 앉아 있는 모습이 커다랗게 눈에 들어온다. 수개월째 원형탈모로 치료중인 모자다. 그 분들이 진료실을 들어서면 독특한 나만의 식스센스가 발동하여 향기를 느끼곤 한다. 단순하지만 수려한 잎 사이로 소박한 꽃을 피워내는 난에서 풍겨 나오는  짙은 향기가 그 모자에게도 난다. 지인의 소개로 오시는 분들인지라 인적사항을 알고 있다. 아들은 대구에서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회사를 경영하는 중견 기업인이다. 그분은 모친이 뇌졸중, 당뇨등 여러 성인병에 합병증이 발생하자, 수년전부터 은퇴하고 모친을 모시고 병원에 다니며 간호하고 있다. <br />
최근에 나는 짙은 꽃내음을 풍기는 두 편의 보석 같은 이야기를 접했다. 90대 치매 모친과 노인복지관에 같이 다니는 70대 은퇴한 교장 선생님 사연이다. 충청도 양반고을 출신인 이 교장선생님은 치매로 갖은 기행과 언행을 일삼는 모친을 복지사에게 맡기기 미안해서 같이 등록하였단다. 치매노인 때문에 현대판 고려장도 일어나고 자손들의 가정이 파괴되는 예를 많이 들어서 치매의 기행쯤이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 모친과 하루 종일 같이 다니며 흘리는 침도 닦아드리고 억지소리에 장단도 맞추고, 걷잡을 수 없는 식탐을 저지하며 모친과 같이 아리랑을 병창한단다. 또 한편의 명품스토리는 12년째 식물인간인 모친을 돌보는 한 청년의 이야기이다. ‘엄마는 소풍중’이란 책의 저자인 그는 건축학과 대학원생일 당시 모친이 사고를 당하자 학업을 전폐하고 모친을 간호하였다. 무모하리만치 파격적인 결정 이였지만 식물인간 어머니로 인해  취직하고 결혼도 한 권선징악 스토리를 가진  해피 엔딩의 주인공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자신의 간병일지를 교회 홈페이지에 실었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어  대기업 홍보팀에 취직되고, 자원봉사 나온 참한 크리스챤 아가씨와 결혼하게 된다. 그는 모친이 소풍중이고 곧 돌아오실 것으로 믿는 대책 없는 아들이고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긴 병에 효자 없는데 너는 진짜 효자다’ 말이라는 현실감 없는 아들이다. <br />
나도 이제 장성한 두 아들을 가진 부모가 되고 보니 이런 이야기들이 진하게 다가온다. 내가 아이들에게 효도를 바라기 전에 나는 못된 불효가 없었는지 돌아본다. <br />
‘나도 같이 가자 - 노인네는 집에서 애들이나 보세요! 나도 용돈 좀 다우 - 노인네가 쓸데가 어디 있어요? 나도 이런 옷 입고 싶다 - 노인네가 아무거나 입으세요! 힘들어 못가겠으니 오너라! - 노인네가 택시 타고 오세요! 그렇게 하면 안 된다. - 노인네가 가만히 방에나 들어가 계세요! (못된 불효-유순)’<br />
이 못된 불효에서 나는 과연 완전히 자유로운가? ’험난한 바람에도 눈보라에도 천둥 번개 치는 천지개벽에도 가만히 이끌어주는 조국이요, 종교이며, 안방 같은’ 부모님에 대해 나는 과연 못된 불효를 하지 않았는지 짚어본다.  어릴 적 받은 사랑의 무게를 헤아리며, 한 없이 베푼 그분들의 사랑이 허무해지지나 않았는지 곱씹어 본다.  <br />
 <br />
2009.2.12  매일신문 고운미피부과 정현주 원장<br />
close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