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의 고운미
event_available 09.10.26 11:02:37
1951

작성자 : 관리자

사랑한다 아들아

본문

사랑한다 아들아  <br />
<br />
올해의 가을은 유난히 스산하게 느껴진다. 개미의 가는 허리만큼이나  허약해진  체력이 나를 서글프게 하고 조그만 일에도 자주 붉어지는 눈시울이 갱년기가 임박했음을 시사한다. 거실의 창 너머  보이는 산들이 하루가 다르게 색깔이 변하고 있다. 이렇게 단풍이 들면 나는 가슴이 울렁거리는 묘한 증상이 도진다. 올해는 입시생 아들 탓에 울렁증이 더 심각하고 가을이 가슴 깊숙이 더 내려앉는다. <br />
<br />
수능 시험을 앞두고 하루가 다르게 예민해져 가는 아들을 바라보면서 안타깝기도 하고 슬그머니 화가 나기도 한다.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고등학교 삼학년  수험생들에게는 오후 늦게 까지 계속되는 정규 수업 후에  밤늦도록 자율 학습이란 명칭의 타의에 의한 학습이 실시된다. 우리 아이도 예외 없이 이런 과정을 거친 후 집에 돌아온다.  심야에 귀가한 아이는  웃음을 잃은 얼굴로 파김치가 되어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제방으로 직행이다. 아침이 되어 등교 시각에 맞춰 아이들 깨우려면 기분이 상하거나 애처롭거나 둘 중 하나다. 모자라는 잠을 방해 받은 아이는 깨우는 나를 향해  철천지원수를 만난 양 거칠게 도리질하거나  아주 불쌍한 얼굴로 ‘오분만’ 이라고 애절하게 잠을 구걸한다. 이런 아이의 부자연스런 일상을 바라보는 일은  상당한 인내가 필요하다. 거창하게 우리나라 교육제도를 평가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내가 가슴 아픈 것은 저런 일상이 한창 자라는 사랑하는 우리 아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가 하는 본질적인 회의다. 며칠이 멀다하고 치르는 모의고사 점수에 일비일희하는 아들과 나자신을 바라보며 질적인 삶의 행복지수를 떠올려 본다. 아침마다 신문을 보며 세상을 걱정하고 일상에 촌철살인의 유머를 발휘하는 유연한 사고를 가진 아들은 모의고사 성적이 초라하여  자신이 열등하다고  단정짓고 우울해한다.  수능 시험 앞에서는 수학 잘하는 사람과 수학 못하는 인간의 두부류로 양분 된다고 입버릇처럼 한탄하는 아들 녀석의 어깨가 오늘은 유난히 처져 있다. 어제 치른 모의고사에서 수학을 또 망쳤나보다! <br />
<br />
유명한 교육학자가 어린 딸을 앞세우고 공원을 산책하던 중 아기가 발이 엇갈려 넘어졌다. 학자는 얼른 달려가 아기를 일으켜 세웠는데 옆에 있는 초라한 노인이 한마디 건넨다. “그 아기 왜 일으키는 거요? 아기는 지금 걸음마를 배우는 독립을 연습하는데.. 부모가 왜 방해하는거요?” 이론으로 무장한 교육이론도 노인의 삶의 지혜에 허물어지는 순간이다. <br />
<br />
부모로서 나도 지금의 아들이 너무 안타깝고 어떨 때는 지름길을 두고 돌아가는 우를 범하여 아들을 보며 발을 동동 구른다. 얼른 달려가서 당장에라도 일으켜 주고 싶지만 이를 악물고 참는다. 넘어지는 아기를 가슴 아리게 바라보듯 조금 어려워 할 때까지 ‘독립운동’에 도움이 되는 데 까지 기다려 주어야 한다. 우리 아들이 50Kg까지 역도를 들 수 있다면 52Kg 까지는 힘들지만 힘껏 밀어 올리는 쾌감을 느낄 수 있다. 우리가 기다려야 하는 시점이다.  52Kg를 넘어서면 쾌감은 사라지고 고통만이 남는다.  아기가 넘어져 위험하다면 쏜살 같이 달려가 일으키듯 이제는 부모가 도와주어야 하는 시점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식은 부모의 무원조, 불간섭 때문에 부모의 사랑을 의심하여 비뚤어지기 시작한다.  기다리는 시점과 도와주는 시점을 잘 분별하는 지혜가 부모가 가져야 할 또 하나의 덕목인 것 같다. <br />
<br />
2009.10.22 매일신문 정현주 원장
close
close